세월 가면서 설날 풍경도 조금씩 변해

차례 지낸뒤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

풍습 사라졌듯 명절 자체도 사라질까
 

이동우 (한국언론진흥재단, 작가)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밀가루를 이용해 과자를 만들었다.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편 다음 네모나게 잘라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튀겨냈다. 주로 꽈배기 모양의 과자와 건빵 모양의 과자가 많았다. 충청도 지방에선 차례 상에 과자가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데 어머니는 과자를 시장에서 구입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만들어 차례 상에 올렸다. 

밀가루 과자는 설날이 되기 전까지 토광의 선반위에 보관해 두었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 마다 어머니 눈을 피해 몰래 과자를 꺼내 먹곤 했다. 
 

흰 가래떡도 설날이면 꼭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가래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날부터 쌀을 물에 불려 놓아야 했다. 가래떡은 보통 두말정도 했는데 그 많은 양을 물에 씻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커다란 고무 다라에 쌀을 넣고 펌프로 물을 길어 올려 그 추운 겨울에 고무장갑도 없이 쌀을 씻어야 했다. 

가래떡을 만드는 방앗간은 동네 어귀에 있었다. 가래떡을 뽑는 날이면 방앗간에서는 하루 종일 하얀 수증기가 뽀얗게 뿜어져 나왔다. 아이들은 얼음판위에서 썰매를 타다가 수시로 방앗간을 들락거리며 따뜻하고 쫄깃쫄깃한 가래떡을 얻어먹었다. 유리로 된 방앗간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뽀얀 수증기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앗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기계에서 뽑아져 나온 가래떡은 곧바로 찬물에 담가졌다가 적당한 크기로 잘라져 빨간 고무다라에 차곡차곡 담겼다. 어느 집이건 제일 먼저 뽑아져 나온 가래떡을 사랑방에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건 당연했다. 방앗간의 사랑방은 부뚜막에서 연신 쌀을 쪄 내느라 장판이 까맣게 될 정도로 뜨거웠다. 
 

엿을 만드는 일도 겨울이면 빼놓지 않는 일이었다. 엿을 고는 날이면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주걱으로 가마솥을 휘젓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어머니의 몸은 고되고 굴뚝에선 하루 종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엿 이외에도 어머니는 두부를 만들어야 했고 차례주로 쓰일 동동주를 담가야 했다.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만두소를 만들고 수 백 개의 만두를 쉼 없이 만들어야 했다. 

설날 하루 전에는 전을 부쳤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 뚜껑을 거꾸로 닫아 그 위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쳤다.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그 냄새에 이끌려 부엌으로 갔다. 부뚜막 옆에 앉아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으면 어머니는 차례 상에 올릴 것도 모자란다고 하면서 금방 부친 전을 손으로 집어 주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가장 그리운 음식이기도 하다. 
 

설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냈다. 차례를 지내기 전에 상에 음식을 차리며 아버지는 “나중에 네가 해야 되는 일이니 잘 봐 두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율이시(棗栗梨柿),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해(左脯右醢), 어동육서(魚東肉西)를 일러 주었다. 차례가 끝나고 나면 다 함께 식사를 했고 성묘를 갔다. 성묘를 하러 가는 길에는 언제나 눈이 쌓여 있었다. 

어린 시절의 설날은 이렇게 기억된다. 뽀얀 김이 연신 뿜어져 나오던 흰 가래떡, 방앗간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증기, 갈색으로 변해가는 엿, 밀가루 과자, 두부, 며칠이고 방바닥에 앉아 빚었던 만두, 어머니가 집어주시던 전. 
 

세월이 가면서 설날 풍경도 조금씩 변해갔다.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풍습도 이젠 사라졌다. 설날이면 서울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이던 시골동네도 이젠 한적하다. 
 

어머니가 만들던 음식도 더 이상 없다. 밀가루 과자와 엿은 만들지 않고 가래떡과 만두는 마트에서 구입한다. 그래도 아직 전은 집에서 부친다. 명절인데 집안에서 기름 냄새는 풍겨야 한다는 아내의 주장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전을 부쳤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모두가 함께 앉아 아침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는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을 간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고, 동생은 처갓집으로 가고, 작은 아버지도 서울로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가고 텅 빈 집에 홀로 앉아 있다. 설 풍습이 조금씩 사라졌듯, 이제 설 명절도 그런 운명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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