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연재소설】 계변쌍학무(41)

                                               그림 : 배호

하문은 석가치를 따라 박수를 치면서도 눈앞이 몽롱했다. 방금 춤을 춘 것이 사람인지 정말 새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과연 아령이 알에서 나왔다는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하문은 자신의 심기가 약해 쉽게 헛것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대단합니다. 그런데 거사님께서는 어떻게 입을 열지도 않으면서 이야기를 저에게 전달해 주시는 것인가요? 마치 무엇에 홀린 듯한 기분입니다. 비법이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이심전심의 묘법이 아니겠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게 되면 그런 것이오.”

석가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소. 나는 국사이신 효신스님의 상좌로 황룡사에 머무르고 있었소,”

 

5. 새의 기원

신라에서는 왕의 동생이나 왕비의 친정아버지를 갈문왕으로 삼아 왕을 보필하게 했다. 석가치가 갈문왕의 딸인 부용공주를 만나게 된 것은 운명 같은 일이었다. 월성에서 황룡사까지는 먼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왕가의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하루는 부용공주가 시녀 한 사람만 데리고 황룡사를 찾아왔다. 마침 국사이신 효신스님은 왕실의 회의에 참석하러 가고 석가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용공주는 평소에도 석가치와 소소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그날따라 부용공주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잔뜩 끼어 있었다.

“공주님 어디 편찮으신 데가 있으신지요?”

석가치의 말에 부용공주는 얼굴을 가리고 울기부터 했다. 한참을 울고 난 부용공주는 석가치 앞에서 어렵게 입을 떼었다.

“요즘은 내 마음 속에 본래의 나는 사라지고 이상한 여자가 들어와 사는 듯합니다.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스스로 할 수가 없으니 이일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하문은 방금 눈앞에서 춤을 춘 것이
              사람인지 새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령이 알에서 나왔다는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정하시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차근히 이야기해보세요.”

“이런 일을 어디에 대고 말할 수가 있겠어요. 스님이니까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제가 들은 이야기는 부처님께 올린 말씀이나 같습니다.”

“그럼 믿고 말씀 드리겠어요. 사실은 제가 아이를 가졌습니다.”

석가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황룡사에 찾아오는 부용공주를 보고 남몰래 연정을 품어 오던 석가치였다. 자신이 불가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부용공주와 같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어차피 불가의 몸이 아니라도 공주와 혼인하는 조건이 쉽지는 않지만 마음은 자꾸 공주에게로 갔다.

이생에서 공주와 불가의 제자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사람에게는 신분이라는 것이 주어져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인지 원통한 마음도 들었다.

부용공주를 향한 연정의 마음은 불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수그러들고 수그러들었다가는 다시 불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이었는데 공주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도대체 누굽니까? 공주님의 옥체에 손을 댄 자가.”

“스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한 마디도 입을 열 수가 없답니다. 내가 일찍이 스님께서 저를 어여삐 생각해 주셨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서라벌의 왕실 법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왕실뿐 아니라 여염집의 여인이 혼인 없이 아이를 가지면 바로 화형에 처해졌다. 지금까지 왕실의 여인이 화형에 처해진 전례는 없었다.

석가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배신감을 느꼈다. 왕실의 여인이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부용공주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들끓는 지옥 속에서 단련시킨 그 장본인이 부용공주였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와 드리겠습니다.”

석가치는 말과 달리 마음속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어쨌든 마음 속에 품었던 여인이었다. <계속>

김태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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