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연재소설】 계변쌍학무(51)

그림 : 배호

 

“이제 준비가 되었으면 시작하시오.”

하문은 활에 살을 메겨 힘차게 시위를 잡아당겼다. 용마루 위의 학이 화살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학의 모습이 커다랗게 변하더니 얼마 전에 죽은 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늘 핼쓱한 모습을 보이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생기가 도는 얼굴로 방긋방긋 웃기까지 했다.

“새를 쏘려면 새가 되어야하네.”

조금 전에 들었던 석가치의 말이 귓속에 맴돌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누이가 마지막 남긴 말도 생생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오라버니 다음 생에서는 부부가 되어 만나요.”

하문은 팽팽하게 당긴 시위를 놓았다. 한 생에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보는 하문의 마음은 덤덤했다.

학은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날개를 활짝 펴더니 열길 높이로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더니 곧장 아래로 떨어져 내려왔다. 어느새 구경을 나와 있던 사람들이 와아, 함성을 질렀다.

함성에 놀란 것인지 월성과 계림의 나무 숲속에서 앉아 있던 새들이 떼로 날아 올랐다. 대부분 백로 떼인데 거기에 머리가 붉고 검은 깃이 섞인 두루미 떼가 섞여 있었다.

군사들이 강변으로 내려가 떨어진 학을 수습해 갈문왕 앞으로 가져왔다. 화살은 정확하게 학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펼쳐놓으니 그 길이가 육척이었다.

갈문왕은 새를 수습해 마차에 싣고 왕궁으로 향했다. 하문과 석가치, 아령은 그 뒤를 따랐다. 월정교의 학을 떨어뜨렸다는 소식은 바람보다 빠르게 서라벌 전역으로 퍼졌다. 갈문왕이 북천변에 있는 본궁으로 가는 연도에는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갈문왕 일행이 왕궁으로 들어간 뒤에도 구경 나온 서라벌 사람들은 성문 앞에 모여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제 서라벌을 구할 대장군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며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면서도 왕궁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했다.

소식을 들은 국왕은 정전 앞의 높은 누대에 나와 갈문왕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왕은 멀리에서 다가오는 갈문왕 일행을 보고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궁수인 하문의 체격 때문이었다. 적어도 학을 쏘아 떨어뜨린 장수는 팔 척에 거구의 믿음직한 장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대가 학을 쏘아 떨어뜨린 하문이란 자인가?”

국왕의 목소리는 소년처럼 카랑카랑했다. 검은 눈썹 밑에 두 눈에는 범처럼 광채가 흘렀다. 하문은 큰절을 올린 다음 이마가 땅에 닿도록 자세를 낮추었다. 석가치와 아령도 무릎을 꿇고 엎디었다.

“어서 대답해보라. 그대가 김자경 대장군의 자제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제 서라벌에 어두운 구름이 모두 걷히고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도다. 약속한 대로 그대를 신라군의 선봉장으로 삼을 것이다. 속히 지원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달려가 어려움에 빠진 신라군을 일으켜 세우도록 하라.”

“명심하겠습니다.”

              한 생에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보는
              하문의 마음은 덤덤했다.

 

국왕은 함께 엎드려 있는 석가치를 불렀다. 가잠성의 왕세자가 보내온 사자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석가치를 국원성의 고구려 진영으로 데려가야 한다는데 어찌하면 좋을지 물었다.

“이번에 어찌되었든 그대의 힘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대는 지금 당장 국원성으로 가야하네. 이번에도 그대가 예언한 것처럼 학을 쏜 자가 백제군을 물리치게 될 것이 확실한가? 그대가 없어도 가능한 일인가?”

“그렇습니다. 소인이 제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환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되었다. 하문을 선봉장에 임명하고 바로 전장으로 보내도록 하라.”

석가치는 국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선 끝까지 하문을 곁에서 보필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당장 전장에 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석가치는 담담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석가치는 마지막으로 국왕에게 중요한 청을 넣었다.

“한 가지 더 청할 것이 있사옵니다.”

“말하라.”

“이번에 출전하는 서라벌의 군사들뿐 아니라 지금 전장에 있는 모든 서라벌 군사들의 이마에 하얀 새의 깃털을 꽂게 하십시오.”    <계속>

 

김태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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