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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꽃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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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20.09.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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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경주 남산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
어딜 가도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는 부처님 얼굴 만나

자꾸만 뒤돌아보며 빙그레 웃음 담아가는 가슴 ‘흐뭇’

복잡한 퇴근시간을 훨씬 지나서 비교적 한산한 늦은 저녁 전철 안에 노동복 차림 두 청년이 조는 듯 자는 듯 피곤한 기색이지만 평온하다. 사실 이 시간쯤 전철 안은 이런 장면이다. 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가깝게 들릴 정도로 전철 안은 조용하다. 한 청년이 느닷없이 입을 적 벌리고 하품을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 옆 친구가 손가락을 친구 입안에 넣다 빼면서 “미안해 며칠 손을 안 씻어서.” 하품하던 친구는 으레 그런 양 시치미를 뚝 떼며 “괜찮아, 한 일 년 이를 안 닦아서.” 그러면서 두 청년은 눈도 뜨지 않고 다시 그 모습이다. 이 천연덕스러운 두 청년이 주고받는 농담과 익살로 옆 승객들은 소리 없는 웃음을 짓는다. 
유머가 없는 세상은 쓸쓸하거나 막막하다. 그렇잖아도 전염병의 창궐로 모두 불안에 얼어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이상 웃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시인 김상용은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구절로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마무리하고 있다. 시(詩) 앞 구절들을 심오하게 두지 않더라도 ‘왜 사냐건 웃지요’만으로 읊조려보면 웃음은 본래 있거나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은 웃고 싶은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웃을 수 있는 자료와 도구를 늘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야, 어느 때라도 웃음보따리를 풀어낼 수 있다. 그래서 웃음이 가득한 경주 배동 선방골에 송림으로 둘러 싸여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石造如來三尊立像)의 웃음을 만나본다.
선조들은 ‘좋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이웃과 자신을 닳은 ‘웃음’을 풍자와 해학으로 불상을 빚어내고 있다. 여기 삼존불도 좋은 보기이다. 중앙의 아미타여래상은 부처라는 위엄도, 거룩한 자비도 느낄 수 없다. 시골할아버지가 손자를 대하듯이 아무 꾸밈새 없는 정감이 넘치는 웃음을 짓고 있다. 두려운 것을 없애 준다는 약속으로 오른손 바닥을 앞으로 하여 위로 향해 들었고,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는 약속으로 왼손은 손바닥을 앞으로 하여 아래로 향해 들었다. 인간들은 약속 할 때 도장을 찍는다. 그러나 부처님은 날인 대신 약속을 손 모양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손 모양을 수인이라 한다.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 본전불은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과 체구로 오히려 따뜻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일체의 재주를 감추고 구수하고 넉넉함을 품고 있는 웃음은 원래 우리 민족의 부드러운 심상의 바탕에서 우러나온다. 
왼쪽 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로서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웃음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더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정병을 잡고 있는 것은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을 주듯이 괴로운 사람을 구하겠다는 보살의 약속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렇게 물건으로 약속을 표시하는 것을 계인(契印)이라 한다. 가느스름한 작은 눈이며 조용한 코, 상현달 모양으로 내민 입술들은 모두 조그맣게 나타나 있는데 비해, 두 뺨은 아주 널따랗게 언덕을 이룬다. 둥그런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이 가득 넘친다. 오른쪽 보살은 대세지보살로서 역시 전체적으로 잔잔한 내면의 웃음을 짓고 있다. 고대 신라는 웃음을 만들어 내는 나라이었다. 신라인들은 염화미소(拈華微笑) 같은 그들의 웃음을 영산회에서 세존과 마하가섭의 이심전심 같은 심정으로 남산 기슭을 온통 빙그레 웃음으로 꽃 피웠다. 남산 어느 골을 가도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는 부처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소리 내는 웃음과 소리 없이 갖가지 표정을 지으면서 웃는 모양을 ‘웃는다’라고 하는 우리말이 있다. 이 ‘웃는다’에는 어찌씨와 어찌말을 써서 나타내는 우리말만의 창의성이 있다. 외래 어떤 말로서도 이 섬세함을 구사 할 수 없다. 조선조실록에 미소(微笑)라는 말이 수십 차례 실려 있다고 해서 ‘미소’가 우리말이 아니다. 미소(微笑)라고 중국문자를 쓰고 말하기는 일본 말 ‘미소’라고 표현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미소는 ‘단순한 웃음’ 일 뿐이다. 어쨌든 선방골 날머리에서 자꾸만 뒤 돌아 보면서 세분의 빙그레 웃음을 담아가는 가슴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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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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