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가장 큰 규모의 성곽
중요 유적으로 가치 더 높여야
범시민적 공감대 형성‧지원을

배종환 세무법인 충정 울산지사 회장

몇 해 전 울산박물관에서 열린 ‘역사의 길목을 지키다, 울산의 성곽’ 전시회에 가 본 적이 있었다. 성의 종류를 읍성, 관방, 목장성, 왜성 등으로 분류해 현재 울산에 남아있는 성을 소개했었는데 그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서생포왜성, 울산왜성처럼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쌓은 ‘왜성’에 대해 배운 것이 많아 성곽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으레 그 날을 떠올리곤 한다. 서생포왜성과 울산왜성은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주둔하면서 여러 차례 전투가 있었는데 울산왜성의 도산성 전투가 유명하다고도 한 스토리는 필자가 여러 번 인용하기도 했다.

당시 매우 인상적이었던 게 전시의 주테마인 ‘관방’에 대한 것이었다. 경상좌수영이 있던 개운포성, 경상좌병영성, 유포석보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길목을 지키는 울산의 지형적 특징을 쉽게 풀이해 줌으로써 받은 감명은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17일 울산시 남구에 위치한 엑소21컨벤션에서 열린 ‘개운포성 국가사적지정을 위한 학술 심포지엄’에 필자가 참석한 것도 같은 연장선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이날 심포지엄은 지난 번 10월 15일 1차 발표에 이어 2번째로 열린 것이어서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 취지가 남달랐다는 점에 우선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내용면에서 참석자들의 자긍심을 높여 준 점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국가사적지로서 개운포성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한 문화재 전문가들의 연구성과 학술발표를 통해 국가사적지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풀어줘 시민으로서 해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시금 다잡는 계기가 된 자리였으니 필자는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과 만족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알다시피 울산은 왜와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때문에 고려 말·조선 초 이후 지속된 왜구의 침탈에 대비해 해안 지방의 철저한 방어선이 필요한 군사전략지였다. 따라서 개운포에는 조선 초기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 구축됐다. 그러다가 세조 때인 1459년부터 중종 때인 1534년까지 개운포에 경상좌수영(慶尙左水營)을 두었다. 임진왜란 이후 개운진이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으로 옮겨가고 그 장소에는 인조 때 전선소(戰船所)가 설치됐다. 개운포 성지(開雲浦城址)는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그동안 개운포성지는 허술한 관리와 방치 등으로 인해 그 가치를 크게 떨어트리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해 지난 2010년대 초반께 시민단체 등에서 훼손된 공간을 정비해야 한다며 민원을 제기했고, 이에 남구가 해당 공간의 역사가치 정립과 정비계획을 마련해 일부 구간을 공원화하고 답사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2018년 이후에는 ‘개운포성지 사적 지정’을 위한 시민운동도 전개됐다. 그나마 다행인 셈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도 울산대 한삼건 명예교수가 성곽내부와 선소유적 등에 대한 지속적 발굴조사와 연구 활성화를 위한 지원체계 수립, 성곽유적 보존을 위한 적극적인 도시계획 재정비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부산시립박물관 임시수도기념관 나동욱 관장도 개운포성이 조선전기 경상좌수영의 영·진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곽으로 위상이 크고 잔존상태나 보존환경도 양호하기 때문에 발굴조사를 더 진행해 중요 유적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평가했고, 문화재 명칭변경과 같은 현실적 고민도 거론된 만큼 향후 울산시나 시민들의 노력이 집중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울산시 남구가 곧바로 개운포성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승격을 위한 자료집대성, 국가사적지정 신청보고서 작성한 뒤 울산시 및 문화재청에 접수, 개운포성 국가사적지정을 위한 범시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하니 기대해 봄직도 하다. 공감능력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성의 있는 지원과 함께 강한 실천력을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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