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하 극작가·연출  
 
   
 
 

# “올해가 공업센터 60주년 아이가” 잔기침을 참으며 말을 이어가는 박복숙 할머니. 울산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만난 그의 눈빛에는 울산 민초들의 애틋한 삶의 여정이 펼쳐지고 있었다. “6.25전쟁부터 이야기 해야제. 6.25전쟁 일어나가 울산에 피난민하고 다친 군인들이 마이 왔다. 울산국민학교에 육군병원 생기고 학생들은 학교 비워주고 학교 앞 태화서원과 함월산 백양사에서 공부했다 아이가. 울산농고 앞 달리역에는 부상병들이 밤낮으로 마이 왔다. 낙동강까지 북한군이 쳐들어 와가 학도병으로 전쟁터 마이 갔다. 포항하고 영천 쪽으로 갔다.” 잠시 숨을 가다듬는 할머니의 모습. 아련한 기억들을 되살리는 표정에는 슬픔이 해무처럼 밀려왔다.



# “6.25전쟁 끝나고 전쟁터 갔다 온, 아 아버지는 목숨 줄 하나 붙어가 왔는데 몸이 그래 되가 뭔 일을 할 수가 있나. 그래도 우야노 산 사람은 살아야제. 양철 다라이라고 있는데, 그거 살 형편 안 돼가 누가 버린 거 주워가 배추 담아가 팔았다. 배추 안 시들게 물 보자기 덮어가 장터까지 20리는 걸었다. 머리에 이고 가는데 다라이가 빵꾸 났는지 물이 질질 내려와도 우야노. 자식들 입에 수제비라도 묵일라모 물 새는기 대수가. 묵고 살라모 머를 못하겠노“



# “요새 세상 좋아졌다 아이가. 이런 말 하모 다 씰데없는 이야기라 하겠지만 그래도 다 알아야제. 안 해본 일이 없다. 밭일도 다 했다. 그때는 거름으로 똥도 퍼야하는데 똥통 지고 가모 어깨가 뻘겋게 멍들고. 참말로 안 해본 일이 없다. 목이 메는지 잠시 숨을 고른 할머니는 울산에 공장이 건설되는 시절을 흑백필름처럼 회상했다. ”설탕공장, 정유공장 생기고 공장 마이 지어졌다 아이가. 공장 들어서모 끼니 걱정 없다고 좋아 했지만 부곡하고 대현하고 배농사 밭농사 짓던 사람들하고 용연 온산 바닷가 사람들 다 이주했다. 얼매나 마음고생 심했겠노. 몇 백 년 살던 고향인데... 우야노, 나라에서 시킨 일이라 다들 보따리 싸고 고향을 떠났제.....



극작가 ·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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