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라 소설가
강이라 소설가

 슬도에 봄이 왔다. 노란 유채꽃이 피는 봄이요 문화예술이 피어나는 봄이다. 동구 방어동에 위치한 슬도는 방어진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이다.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해 거문고 슬(瑟)자를 써서 슬도(瑟島)라 부른다.

 울산 동구 슬도가 한국관광공사 주관 2024 강소형 잠재관광지 육성 사업에 선정됐다. 강소형 잠재관광지 육성 사업이란 대외 인지도는 낮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 관광지를 선정, 한국관광공사와 지자체의 지원을 통해 지역 관광지로 육성되는 제도이다. 지역 주민들의 관광 기회를 확대하고 관광 산업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져 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해파랑길 8코스인 대왕암과 오토캠핑장 옆 흙길을 걷다 노란 유채꽃밭에 감탄하며 문득 고개를 들면 저 멀리 슬도가 보인다. 성끝마을의 좁고 구불한 골목에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며 슬도 등대를 향해 다시 걸어가면 방파제 쪽으로 꺾이는 자리에 슬도 아트와 아기자기한 카페, 식당이 쉼표처럼 모여 있다. ‘슬도 아트’는 지난 1월에 개관한 복합예술 시설로 이전까지 소리체험관으로 운영됐던 곳을 재구조화해 예술작품을 만나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연간 기획전시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과 예술 세계를 소개하는 2층의 갤러리 아&트에서는 '바운더리와 기억의 순간들'이란 제목으로 강현신·김지효 작가의 2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관람자들은 평면, 입체, 영상 작품을 통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느끼고 삶의 순간들을 되짚어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관람을 마친 후 3층 루프탑으로 올라가 330°바다뷰와 슬도의 파도 소리를 함께 듣는다면 반복되는 일상에 고단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예술과 자연에서 받은 위로와 위안의 힘으로 사람들은 슬도 아트를 나가 등대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1992년 출간한 「비장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장소(非-場所·non-places)란 ‘장소 아닌 장소’, 인류학적 장소가 아닌 장소를 말한다. 사람들이 정착하고 전유하고 교류하는 곳이 장소라면, 비장소는 통과하고 소비하고 소외시키는 곳이며 비장소의 이용자는 수많은 사람과 함께 움직이지만 결국 혼자일 따름이고 개인은 능동적인 행위자로서보다는 수동적인 목격자로 위치 지어지며, 타자를 향해 열리기보다는 자기 자신에로 돌아간다고 했다. 교통수단과 관련 시설, 일시적인 체류 공간, 소비와 위락 공간, 미디어 네트워크가 이에 해당한다. 오제에 따르면 ‘슬도 아트’는 비장소이다. 우리는 비장소인 그곳에서 철저한 익명성과 고독을 보장받으며 스스로를 목격하며 되돌아볼 시간을 얻게 된다. 현대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문화예술공간과 전시, 공연, 체험 같은 간접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비장소에 잠시 머무름으로써 우리는 장소로의 귀환을 마음의 안식처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슬도 아트'에서 멀지 않은 방어진항에 함께 개관한 '문화공장 방어진'이 있다. '문화공장 방어진'은 방어진 활어센터의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갤러리와 작업실 겸 창작실을 갖추고 있다. 개관 기념 기획 전시 「랜드스케이프」 전을 얼마 전에 끝내고 지금은 다음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오래된 냉동창고를 리모델링해 복합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남구 장생포 문화창고처럼 '문화공장 방어진'도 동구의 문화예술공간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리라 기대한다. ‘슬도 아트’와 ‘문화공장 방어진’은 문화예술의 비장소이다. 서로를 소외시킴으로써 개인 정체성을 회복하는 재생적 공간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삶과 문화,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지우며 일상의 쳇바퀴를 다시 돌릴 수 있는 선순환의 에너지를 얻는다. 울산에 좀 더 많은 문화예술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올봄 슬도는 아름답다. 유채꽃이 지기 전에 꼭 가보기를 권한다. 슬기로운 슬도 생활 되기를. 강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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