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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칼럼] 인간, 기술 그리고 디자인 <2> 세탁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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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 승인 2021.05.1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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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전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19세기부터 세탁기 발전…현대사회구조 형성에 중요한 역할
빨래 부담줄여 여성들의 사회 활동 가능케 급진적 변혁 일으켜 
더 많은 옷·침구 세탁…여성 가사노동 오히려 늘고 가정 고립
육체적 노역 줄었지만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 초래 ‘아이러니’  

세탁기의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6월이면 오전에 입었던 옷을 오후에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 여름은 덥고 습하다. 본격 무더위의 전초전인 장마철에는 넘치는 빨래를 말릴 곳이 없어 집안 사방팔방에 빨래들로 가득하다. 그나마 요즘은 건조기 덕분에 그런 풍경들을 볼 일이 줄어들고 있긴 하다.
반면 겨울은 세탁기의 오프시즌이다. 땀을 흘릴 일이 덜하고 볕이 짧아 이불 같은 큰 빨래를 말리기엔 좋은 계절이 아니다.
최근 한반도 상공을 뒤덮고 있는 미세먼지로 인해 이젠 계절 구분 없이 집을 나갔다 돌아온 옷은 세탁기로 직행하게 된다. 사시사철 세탁기엔 고역의 시간들이 되고 있다. 

혹자는 동그란 바퀴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칭송하지만, 대학시절부터 15년 이상 독거경험의 자취프로였던 필자로서는 세탁기야말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세탁기의 발명으로 빨래에 투입되는 노동과 시간에서 해방돼 책이나 TV 등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진정한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세탁기가 제공했던 셈이다. 
최고의 발명품으로 칭송을 받는 데는 사실 다른 이유가 있다. 네덜란드 유학시절 학생기숙사가 부족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3개월 동안 인터넷과 세탁기가 없는 원룸에 살게 됐다. 빨래방은 멀고, 운하에 빨래를 할 수도 없어 동그란 욕조를 구입해 발로 통빨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없는 생활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세탁기 없는 생활은 끔찍하고 성가시기가 끝이 없었다. 고역을 치루면서 3개월을 버티다 드디어 드럼세탁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고, 세탁기 때문에 그렇게 행복하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유럽에는 ‘우울한 월요일(Blue Monday)’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매일 빨래를 할 수 없었던 19세기에 일주일 동안 쌓인 빨래를 주로 월요일에 하는 탓에 생겨난 표현이라고 한다. 필자의 3개월 ‘발’통빨래 경험 덕분에 당시 유럽인들의 우울감을 뼈저리게 공감했다. 필자의 세탁기 에피소드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석사졸업연구로 이어졌다. 석사졸업과제는 ‘세탁기 사용에 있어 동서양 문화적 차이’에 대한 연구였다. 흥미롭게도 연구결과 네덜란드에서는 다이얼방식을, 한국에서는 버튼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기능을 기대하는 한국인에 비해 몇몇 필수 기능만 사용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다이얼은 편하고 직관적이었다. 또 세탁기가 집 밖 창고 공간에 주로 설치된 네덜란드에서는 세탁 종료 알람도 전혀 필요치 않았다. 세탁기를 디자인할 때도 사용 환경과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야 하는 시대다.

최초의 세탁기는 19세기 중엽 미국의 제임스 킹(James King)에 의해서 탄생했다. 나무통에 부착된 수레를 손으로 돌리면 피스톤이 왕복운동을 하고 그때 발생하는 압축공기로 물을 움직여 빨래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이 아내의 생일선물로 기존 방식을 개량해 사용하기 쉬운 소형세탁기를 만들었고, 이 디자인이 가정용세탁기의 초기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세기 초 전기모터기술이 발전하면서 1908년 알바 피셔(Alva Fisher)에 의해 최초의 전기(모터)세탁기가 탄생하게 됐고, 1911년 월풀(Whirlpool)은 자동세탁기를 상용화했다. 

오늘날의 세탁기는 1928년 캐나다 비티 브라더스(Beatty Brothers)에서 만든 통 가운데 봉이 달린 교반식 세탁기에서 시작됐다.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전기세탁기는 1930년대 미국에서 전기와 수도가 가정에 보급되면서 급격하게 증가했다. 흥미로운 것은 1930년대 이전까지는 세탁기에 타이머가 없어 빨래, 헹굼 때마다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고 한다. 탈수 기능은 1950년대부터 가능했다고 하니 지금의 세탁기가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 금성사(지금의 LG전자)가 국내 최초로 ‘백조’ 세탁기(백색가전이라 이름을 그리했겠지만, 백조가 겉으로는 우아해보여도 물속에선 끊임없이 두발로 물질하는 것을 보면 세탁기의 기능과 유사해보인다)를 출시했다. 1974년에는 삼성전자, 1980년에는 대우전자가 차례로 세탁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국내 세탁기 시장은 더욱 확장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 경제적 수준이 향상됐고 기존 성능 중심의 세탁기들이 가구 같이 홈인테리어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런 인식 변화와 요구로 2002년 국내에서도 드럼세탁기가 본격적으로 양산됐다.

혹자에 의하면, 세탁기의 발명이 현대사회구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빨래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더 많은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고 이는 급진적 사회변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기업들은 세탁기가 주부의 노동을 대신하는 마법사이라도 되는 양 광고했다. 그러나 세탁기가 보급되면서 빨래는 여성이 홀로 집에서 하는 노동이 됐다. 이전에는 자주 빨 수 없었던 세탁물을, 세탁기가 등장하면서 여성들은 더 많은 옷과 침구를 세탁해야 했다. 사람들의 개인위생과 청결에 대한 기준 또한 높아져 갔다. 더 이상 빨래는 눈에 띄게 더러워져야 하는 일이 아닌 게 됐다.

결국 빨래라는 육체적 노역은 줄어들었지만 우리는 옷과 침구류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빨래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말처럼 가사 노동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여성을 고립시키는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아이러니다.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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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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