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선수촌 한국선수단 현수막과 일본 극우단체 욱일기. 연합뉴스
김진영 편집이사

‘상유십이 순신불사’가 ‘범 내려온다’로 변경
日 극우세력에 밀린 IOC의 철거요구에 굴복
 외교의 기본 어긴 일본 망발 묵과해선 안 돼

도쿄 하루미(晴海) 지역에 있는 한국선수단 숙소에 ‘범 내려온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항구의 바닷바람을 타고 대륙의 범 한마리가 발톱을 움켜쥐자 왜놈 극우집단이 욱일기를 다시 쳐들었다. ‘범 내려온다’도 걷어내란다. 사건의 실마리는 이렇다. 도쿄에 입성한 한국선수단이 숙소 외벽에 ‘신에게는 아직 오천만 국민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문구의 격문을 붙였다. 보도가 나가자 혐한 시위를 주도하는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연일 시위를 벌였다. 일본 우익의 확성기에 주눅이 든 IOC는 결국 “올림픽에서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표현이 금지된다”라며 대한체육회에 현수막 철거를 요구했다. 대한체육회는 이번에도 멈칫했다. IOC가 욱일기 역시 금지하기로 했다며 현수막을 걷었다. 한국선수단이 붙인 격문은 이순신 장군의 장계다. 두번째 조일전쟁 당시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은 수군을 없애고 육상전에 주력하라는 선조에게 비장한 장계(狀啓)를 올렸다.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아직도 제게 열두척의 배가 있고,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라는 글귀다. 명량의 기적이 일어나기 불과 두달 전이다. 
한일관계가 조일전쟁 상황만큼 극단적이다. 정권 말, 외교 참사를 막고 셔틀 외교를 복원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밑그림은 결국 물을 건넜다.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차 한잔의 약식회담이냐 한시간 이상의 정식 회담이냐를 두고 줄다리기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본질은 다르다. 정상외교의 핵심은 의제에 있지 격식에 있지 않다. 3년 전 아베가 양양공항으로 날아와 약식회담을 했을 때, 일본 언론은 온통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압박했다”는 부분으로 도배를 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 도쿄회담의 본질도 의제에 있었지만 평창 때와는 완전히 양상이 달라졌다. 
결국 판이 깨진 도쿄 한일 정상회담은 마지막까지 양측 외교부의 신경전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이번 회담 조율은 역대급이었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현안이 아니라 건드리면 터져버리는 지뢰밭이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판결, 여기에다 수출규제까지 이미 갈등의 벽은 견고해진 상황이다. 합의를 위해서는 한쪽의 완전한 수용이나 양쪽의 양보가 있어야 하지만 우익의 레이저가 뒤통수를 겨냥하고 있는 스가의 재량권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선택지를 일본에 던졌다. 올림픽 손님맞이라는 명분 앞에 스가의 고민이 깊어지자 재빠른 외교 일꾼이 일을 저질렀다. 스가의 애견 소마 공사다. 소마는 한국언론을 불러 백주에 부임국가의 대통령을 조롱했다. 외교관의 입은 무기다. 조용히 가죽 외피에 넣어두고 가끔 기름칠만 하면 되는 게 외교관의 입이지만 소마의 입은 총질을 했다. 뜻대로 보도가 나가자 한국 정가는 뒤집어졌다. 
내용이 가관이다. 소마의 의도대로 점심자리에 나간 모 방송사 기자들에게 소마는 슬쩍 마스터베이션이라는 말을 흘렸다. 귀를 의심했지만 마스터베이션은 정확한 워딩이다. 그의 워딩을 그대로 옮기면 “일본은 한일 문제에 관심이 없는데 문 대통령 혼자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3년 전 평창에 날아온 아베가 올림픽 리셉션 자리에서 위안부 합의를 주장하다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자 혼자 화장실로 가 한 움큼 휴지를 쥐고 문을 닫아걸었다는 보도를 한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조롱이다. 의도대로 자신의 발언이 외교문제가 되자 일본은 공사의 ‘사적 간담회’라고 선을 그었고 대사가 나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왜놈의 시스템에선 흔한 일이다. 오야붕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자객을 보내고 들키면 우리가 한 일은 아니지만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증표를 보이겠다며 졸개 하나의 배를 가르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즉각적인 경질과 징계도 없다. 
여기에 서울에 와 있는 중국 대사가 또 일을 냈다. 야권 유력 대선 주자의 한미 동맹 발언을 두고 중국 대사라는 자가 정면으로 악다구니를 뱉었다. 사건의 전말을 보면 중국 대사가 한국은 어떻게 보는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발언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했지만 핵심은 중국을 향한 비판은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협박 수준이다. 윤 전 총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는) 명백히 우리의 주권적 영역”이라며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싱하이밍 대사는 “한국인 친구 중에 중국의 장거리 레이더를 문제 삼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며 “천하의 대세를 따라야 창성(昌盛)한다는 말이 있다”고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은 ‘중국 편’에 서라고 노골적인 압박을 했다. 
일본인은 손님을 맞을 때 흔히 오모테나시라는 말을 한다. 환대라는 의미지만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 숨었다. 반면 중국인들은 집안의 가장 깊숙한 내실에 앉아 손님을 맞지만 떠날 때는 문밖까지 나와 과한 스킨십으로 온몸을 만진다. 체면을 중시하고 남을 절대로 믿지 않는 속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상대가 약하면 자신이 부리는 종보다 못하게 대하는 것이 중국인의 근성이다. ‘사드 3불’ 약속으로 군사 주권까지 양보한 현 정부의 외교참사가 일개 대사의 능멸로 이어진 셈이다. 일본 공사의 토악질 같은 입방정은 구벌인세(狗伐人勢)다. 주접떠는 개 한마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 개의 목줄을 쥔 주인 놈의 구린 속내가 리모컨처럼 개의 혓바닥을 조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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