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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V기획/영상] 공해마을 : 끝나지 않은 이주 이야기 #1. 장생포 26통
  • 심현욱 기자
  • 승인 2021.09.1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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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 인접 마을을 집단 이주 시키는 울산 공해이주사업이 마무리된 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1980년대 석유화학과 비철금속단지가 위치한 온산공단의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졌다. 공단 인근에서 ‘이따이 이따이병’ 일명 ‘온산병‘으로 알려진 공해병까지 발생하자 정부는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른바 ‘공해이주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정부는 1985년부터 1999년까지 울산산단 인근의 여천동, 매암동, 부곡동, 황성동, 용연동, 선암동 등 4,866가구와 온산산단 인근 온산읍 이진리 외 15개 마을 2,601가구를 집단 이주시켰다.


하지만 당시 공해 직접 피해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주 대상에서 제외된 곳이 적지 않았다. 좁은 마을 길 하나 때문에 사실상 같은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에 진행된 울산시의 공단 인근지역 이주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이 실제 공해에 노출되어 있는지 여부보다는 행정구역 단위로 이주 지역을 정하는 그야말로 ‘탁상행정’ 때문이었다.

이로인해 ‘공해이주사업’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공해가 만연한 마을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울주군 청량면 오대·오천마을, 남구 장생포동 26통, 남구 야음동 신화마을, 울주군 온산면 산성마을 등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우리는 죽어야 공해로부터 자유로워 질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울산매일UTV가 이들의 아직 끝나지 않은 공해 이주 이야기를 현장 취재했다.         <프롤로그>

 

“내가 죽기 전에 마을을 떠날 수 있을까요”

탁상행정 ‘공해이주사업’에 소외 30여년 방치 47가구
하수시설·도시가스 없어 여름에도 연탄난방 가마솥 사용
공장 소음, 악취에 1년 몇 번씩 화학공장 사고까지 ‘불안’
전문가 “방치는 안돼…도시계획 프로젝트로 해결해야”

 

   
 
  ▲ 장생포동 26통은 장생포동과 매암동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 장생포동 26통 마을 모습  
 
   
 
  ▲ 김상철 씨는 울산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정당 등에 수십 차례 공해 민원을 보냈다.   
 
   
 
  ▲ 수십 년을 장생포동 26통 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  
 
   
 
  ▲ 김영주 할머니가 연탄을 가리키고 있다.  
 
   
 
  ▲ 박진홍 씨가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 남구 야음장생포동 26통 김영주(85) 할머니의 바람은 죽기 전에 마을을 떠나는 일이다.


김 할머니는 24살에 장생포동으로 시집와서 60여년의 세월을 한곳에서 보냈지만, 공해와 불편한 생활 여건 탓에 더 이상 못 살겠다고 토로한다.


김 할머니는 도시가스는커녕 가정용LPG 가스조차 없이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가마솥을 걸어 놓고 생활하고 있다. 산업수도 울산에 아직도 이처럼 열악한 주거지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 마을에는 김 할머니처럼 도시 속의 섬이 되어 고립되고, 방치된 주민이 47가구나 된다.


지난 1980년대 추진된 공해이주사업에서 장생포동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5m 도로를 경계로 매암동과 동일 생활권이었던 집들조차 이주대상에서 빠졌다. 정부가 이주 대상지를 획정하면서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었다. 주민들은 당시 마을에서 포경업 등을 하던 권력층의 로비 영향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 할머니는 “억장이 무너졌지. 한 동네에서 언니 동생하며 지내던 대일(매암동)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빈 집이 늘기 시작하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해는 오랜 시간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


김 할머니는 “공장에서 날아온 매연 때문에 고구마 이파리가 하루 아침에 누렇게 시들고, 땅이 빨갛게 변하기도 했어. 많은 주민들이 공장에서 내뿜는 유해가스를 흡입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 병원 신세를 졌지. 시름시름 앓다가 큰 병 걸려 죽은 이도 있고. 매암동 사람들보다 공해가 더했으면 더했지…. 그런데도 이주를 안 시켜주더라고. 그게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어”라고 회고했다.


공해에 시달린 마을 주민들의 의견은 묵살됐다.


박진홍(74)씨는 “1990년대 초 마을 사람들이 울산시청을 찾아가 데모를 하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 없었다”고 말했다.


김상철(55)씨는 지난 1994년 마을 어른들과 함께 이주추진위원회를 꾸려 지금까지 수십차례 공해 이주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각 정당,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울산시 등에 보낸 민원서류가 셀 수 없을 정도지만, 어느 곳 하나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가끔 국가사업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회신만 받고 있다고 했다.


특히 울산시의 경우 지난 1990년대 중반 주민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이주대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도 예산확보 등의 이유로 흐지부지 됐다고 한다.


그는 “공무원은 2~3년 지나면 부서를 옮기기 때문에 민원의 연속성이 없다. 담당자가 바뀌면 그것으로 끝이다”면서 “지금은 공해 이주를 담당하는 부서조차 모호하다”며 울산시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그렇게 장생포동 사람들이 공해의 괴롭힘과 함께 살아온 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그 사이 마을은 낙후됐고 원주민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직도 일부 가구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연탄을 사용하거나 한 여름인데도 장작을 때서 가마솥에 불을 붙이며 생활하고 있다.


공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을 주위에 속속 들어선 소규모 공장들 때문에 마을에는 악취와 소음이 만연하고 소각시설의 분진도 날린다.


김상철씨는 “악취 냄새가 다양하게 난다. 사탕 타는 냄새가 났다가, 타어어 타는 냄새도 나고…. 1년에 마을 인근 회사에서 2~3번은 화학 사고가 터진다. 주민들이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지만 누구도 우리 마을의 이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울산시가 어떻게든 손을 써야한다고 말한다.


한삼건 울산대학교 명예교수는 “하수도, 도시가스 같은 기반 시설이 들어갈 수 없는 마을의 특성상 노인 세대들이 사망하면 빈집으로 남게 되고, 결국 도시의 최하층민들이 유입되기 마련이다”면서 “결국 행정이 움직이면 되는 일이다. 울산 도시계획에서 아이템이나 프로젝트가 나오면 거기에 따라서 (이주문제를) 굉장히 쉽게 풀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시의 입장을 듣기 위해 담당 업무를 주관하는 부서를 찾았지만 각 부서에서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행정에서도 ‘공해마을’은 잊힌 것 같았다.
영상은 울산매일 UTV 공식홈페이지(www.iusm.co.kr),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user/iusm009)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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