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양 아동문학가

이십대 후반 아들, 자신의 스스로 선택·개척
약한 부분 북돋우는 육아방식, 마침내 열매 맺혀
아직 서툴지만 제 삶 주도하는 모습 대견스러워

“너무 늦은 것 아냐?” 
12시 넘어 들어온 아들이 아직 저녁을 안 먹었다면서 초밥을 시켰다기에 한마디 했다. 아들이 따지듯 대꾸한다. 
“저녁밥을 안 먹은 내가 배고파 시켰는데 왜 엄마가 늦다 안 늦다를 정해. 응?” 
“너무 늦게 먹으면 위가 무거워서 잠자기 안 편하니까.” 
“왜 엄마가 내 잠을 신경 쓰는데?” 
이쯤에서 내가 곱게 손든다. 
“알았어. 엄만 자러 간다.” 
“응.” 
보통 ‘안녕히 주무셈!’이렇게 인사하는데 ‘응’으로 끝내는 건 골이 났다는 거다. 골이 난 상태로도 대답하는 게 기특해 기분이 나쁘진 않다. 아들에 대한 내 사랑은 눈먼 정도가 아니고 아예 눈이 없으니까. 
아들은 이십대 후반이지만 약이 없다는 중2병 생활 중이다. 저야 자기를 무시하냐고 분노의 얼굴로 대들겠지만, 어미인 내가 보기엔 그렇다. 이십대에 중2병 증세라 기가 차고 답답하지만 내 새끼이다 싶으니 그 모습도 사랑스럽다. 
지금부터 나의 세번째 새끼, 귀여운 베이비 이야기를 하련다. ‘베이비’는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의 농도를 가늠하는 징표다. 제 새끼 사랑하지 않는 어미가 있으랴마는 그만큼 아이 키우는 일에 유난을 떨었다는 말이다. 아이가 핸드폰을 지니게 되고 전화번호가 정해지자 아이 이름 대신 ‘귀여운 베이비’로 저장하고 죽을 때까지 부르고자 했다. 눈꼴 시려하는 주위 시선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이 애칭을 부르는 일은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그쳤다. 
“엄마, 이제 밖에서는 베이비라고 부르지 마.” 
“왜? 누가 뭐래?” 
“그건 아니지만 좀 그래.” 
단번에 애칭 부르기를 그만뒀다. 내 어떤 결심도 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되니까. 그래도 집에선 무심코 부른 것처럼 ‘베이비, 밥 먹어.’ ‘베이비, 시험 언제야?’ 이렇게 내 재미를 몰래 취하기도 했다. 
위로 두딸을 두고 아들을 낳아 편애적 사랑을 하는 것 아닌가 하겠지만 단연코 그건 아니다. 유난히 아이를 좋아해서 두딸을 키울 때도 세상에 아이를 나 혼자 낳고 키우는 것처럼 극진하게 키웠다. 
다만 세 번째로 태어난 아들은 신체적인 면에선 위로 두누나처럼 건강했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약했다. 타고난 성향이라 어쩔 수 없지만, 혹시 두딸의 활발한 성향에 눌려 사회생활이 수동적일까, 어미 입장에 안타까웠다. 하여 아들 사랑은 철철 넘쳤는데 그 사랑의 수혜자는 은혜를 모르고 일방적 통보를 했다. 
군 제대를 앞두고 만기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엄마, 내 엄마한테 부탁 하나만 하자.” 
좀체 먼저 요구하지 않는 아들이 목소리까지 나직이 깔고 얘기하자 궁금하면서도 기특했다. 
“이제 내 일은 내가 결정할게.” 
같이 듣던 두딸이 먼저 소리쳤다. 이건 배신이라고. 그동안 엄마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엄마 쓰러지는 걸 보고 싶냐며 놀렸다. 나도 제 누나들 말에 맞춰 목덜미 잡고 쓰러지는 과장된 몸짓으로 웃겼다. 타인의 눈에는 과잉보호로 보였겠지만 아이의 약한 부분을 북돋운다는 내 방식의 육아에 마침내 쥐눈이콩 같은 열매가 맺히는 일이었다. 두딸도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기다렸기에 함께 기뻤다. 
군 전역 뒤 아들이 제일 먼저 결정한 건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는 일이었다. 이유는 전공과목이 맞지 않고 공부 대신 돈 벌고 싶다고 했다. 기성세대로서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었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아들은 성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제 꿈대로 가족 중 통장에 돈이 제일 많다. 아직도 나는 사랑이지만 저한텐 간섭인 실랑이 대화가 가끔 오간다. 그 끝은 항상 내가 물러선다. 여러 면에서 서툴지만 제 삶을 주도하려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거들고 싶을 때면 명령처럼 나를 휘감는 노래가 있다. 불안하고 불온했던 나의 이십대의 해방구였던 Beatles의 ‘Let it be’ 
아마 세계가 갈라진다 해도, 
저기 그들이 여전히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어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답니다. 내버려 두어요, 내버려 두어요, 내버려 두어요, 내버려 두어요. 

조희양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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