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 석장리 선사박물관 전경  
 
   
 
  ▲ 석장리 박물관 내부전시실 모습  
 
   
 
  ▲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선사체험 교육 장면  
 

[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특별기획-방치된 울산의 선사문화, 활용방안 제대로 만들자]

日고고학계 “한반도 구석기문화 없다” 주장할 때
아슐리안 주먹도끼 발견 전 출토된 구석기 유적
한반도 첫 인류 흔적 드러난 고고학 결정적 현장

석장리박물관 구석기교육원 증축 나선 공주시
박물관⋅역사공원 활용 살아있는 체험교육 제공
구석기 테마 공원화 `놀이+교육’ 복합 공간 지향

                                    
(5)한반도 선사문화 편년을 끌어 올린 공주 석장리

#1960년대 이후 한반도 구석기 유적 잇단 발굴

지난 2018년의 일이다. 강원도 정선 매둔동굴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인 2만9,000년 전 무렵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물추가 발견됐다. 한반도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사례는 1970년대 이후 자주 나타나지만 이 정도로 오래된 유물의 흔적은 드문 경우다. 연세대박물관이 조사한 이 유물은 강원도 정선군 남면 낙동리 소재 석회암 동굴인 매둔동굴에서 나왔다. 그물추는 대부분 석회암으로 된 작은 자갈을 이용해 만들었으며, 판판한 받침돌인 모룻돌에 자갈을 올린 뒤 망치로 때려내는 모루망치떼기 방법으로 제작됐다. 이 유적지에서 나온 숯 조각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방사성탄소연대 측정한 결과 2만8,550∼2만9,460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이례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선사문화가 그만큼 오래고 깊다는 반증이다.

한 때 일본 고고학계는 한반도에는 구석기문화가 없다는 식으로 왜곡된 이야기를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의 석기문화와 농경문화는 모두 해양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유입됐다는 식의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주장이 임나일본부라는 왜곡의 결정판으로 이어졌지만 고고학 분야에서 후발주자였던 우리는 이를 반증할 자료가 마땅치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1960년대 전반은 한국의 구석기시대 연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이룩된 시기였다. 1962년 장덕리 유적(함경북도 화대군) 토탄층에서 털코끼리 화석이 발견되고, 이듬해 굴포리 유적(나선시)에서 구석기 유적이 잇달아 발굴됐다. 모두 북한 지역의 구석기 유적이었다.

남한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공주 석장리가 문을 열었다. 1964년 석장리유적의 갱신세(Pleistocene) 고토양층에서 구석기시대 석기가 출토되면서 한반도 선사문화는 출발점이 그만큼 올라갔다. 우리나라 고고학의 자존심을 살린 결정적 발굴이었다. 석장리 유적의 발굴은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이 이루어진 사례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특히 석기 명칭과 분류에서 한글화 작업을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고고학적 사실 말고도 한국고고학의 자존감을 높인 계기가 됐다. 물론 발굴과정에서 나온 수많은 유물은 구석기시대의 시원을 끌어올린 의미 있는 발굴 성과였다.

# 선사부터 고대와 근대를 이어온 공주 석장리의 비밀

충남 공주는 한반도 인류의 정착과 문화적 발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지역이다. 홀로세 시기 지금의 중국대륙과 연결된 이 지역은 10,000년 이전부터 대륙의 문물이 한반도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했고 그 문화의 연결성이 한반도 남쪽과 왜로 이어지는 다양성의 길목이 됐다. 지금 공주 일대는 한성에서 고구려에 패퇴한 백제가 475년 새 수도로 삼은 곳을 중심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돼 관광산업의 특구가 됐지만 그 이전부터 문명의 플랫폼 역할을 해온 곳이기도 하다.

흔히 역사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공주는 구석기시대 인류 흔적인 석장리 유적을 시작으로 공산성,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 등 수많은 우리 문화의 흔적이 배여 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 공주에서도 석장리는 매우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지역이다. 지난 1963년 고고학 조사차 한국에 머물던 미국인 앨버트 모어(Albert Mohr)와 샘플(L.L. Sample) 부부는 홍수로 무너져 내린 공주 석장리 강변에서 뗀석기를 발견했다. 이 발굴의 과정에 한국인으로 함께 참여한 사람이 지금의 석장리 유적을 이끌어낸 연세대 사학과 손보기 교수였다. 전곡리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기 전이었으니 한반도에서도 그토록 찾던 구석기시대 인류의 흔적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지금도 석장리박물관에는 손보기 교수의 고고학적 연구 노력과 석장리에 대한 애정을 담아 기념관을 만들어 그 듯을 기리고 있다.

이후 석장리 유적은 1973년 한 해를 거른 1974년까지 10차에 걸친 발굴 조사가 연차로 시행되고, 다시 이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1990년과 1992년에는 대전-공주간 도로 개설에 따른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2010년에는 문화재 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발굴 조사가 실시됐다. 지금 석장리선사박물관 또 한번의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충남 공주시는 석장리박물관 구석기교육원 증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공주시는 지난 2019년 공주석장리유적 종합정비계획을 수립, 구석기교육원 건립을 준비해 왔다. 25억원이 투입되는 구석기교육원은 내년에 착공,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심도 있는 박물관 교육과 역사공원을 활용한 살아 있는 체험을 동시에 제공하게 된다. 지상 1층 벙커 형태의 지하식 구조로 건립된다. 이곳은 영상교육과 뗀석기 실험실, 소규모 공연실, 프로그램 운영실 등으로 구성된다. 또한 국내외 선사박물관과 네트워크를 통해 구석기 관련 자료를 수집, 제공하는 아카이빙 구축도 구상 중이다. 구석기교육원은 기존의 석장리박물관과 세계구석기공원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리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일이다.

#단순한 전시공간 넘어 테마 공원화로 관광인프라 구축

공주 석장리 선사박물관의 변신은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한반도 최고의 구석기 유적이라는 자부심에다 다양한 고고학적 인프라를 갖춘 지역적 특성을 살린 이 박물관은 이제 테마공원화를 꾀하는 중이다. 오는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구석기 테마 공원은 단순한 역사공원에 그치지 않고 구석기 사냥터, 구석기 야영장, 구석기 공원 등 구석기시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야외 상설 체험을 제공하는 놀이와 교육의 복합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이같은 계획이 추진동력을 갖게된 것은 그동안 석장리박물관이 추진해온 체험교육과 지역사회와의 연게성 강화의 결실이다.

실제로 석장리 박물관은 그동안 문화재 활용과 시설 안전, 지역 및 구석기 문화의 이해, 축제 재미 등의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며 석장리 구석기 유적만이 갖는 특징을 관광객에게 잘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석장리를 찾은 관광객들은 이 박물관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구석기 퍼레이드’를 지목한다. 이와함께 가장 흥미 있는 프로그램은 ‘구석기 음식나라’, 가족과 함께하기 좋은 프로그램은 ‘석장리 가족오락관’ 등을 선정하는 등 체험과 교육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석장리박물관 김수아 학예사는 “석장리박물관의 경우 외지 방문객이 전체 방문객 중 약 82%를 차지할 정도로 확장성을 가진 박물관이다” 며 공주 세계유산센터와 연계한 고대문화로의 여행을 통해 체험과 교육이 가능한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 김진영 편집이사

사진 석장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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