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 울산시 노동정책과 산업안전보건담당사무관

중대재해처벌법, 귀중한 생명 보호 위한 법
市, 자치조례 재정·전담기구 만들어 직원 배치
울산서 산재로 삶 마감하는 사람 없기를 소망

 

2001년, 미국 9.11테러로 3,000여명 희생자가 발생했다. 희생자 보상금이 적게는 3억원, 많게는 34억원으로 무려 11배 차이가 났었다. 훗날 이 결정을 주도했던 케네스 파인버그 변호사는 차별지급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모든 생명은 동등하게 보호돼야 하는 만큼, 모두 동일하게 지급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금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의 다툼이다. 정작, 죽은 사람은 빠져있다. 이제라도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보상책을 내놓을 차례다.
오는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비로소, 보상금의 범주를 뛰어넘어 죽음에 대해 논할 수 있는 법을 갖게 된 것이다.
민간 사업체는 처벌에 주목한다. 처벌이라는 살벌한 어휘 때문에 마치 법을 만든 목적이 처벌인 것처럼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법은 국민의 귀중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안전과 보건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를 처벌해 재해를 예방하고, 시민의 생명을 보호할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안전 의무화를 통해 산재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살리는 법이다.
중대재해 처벌기준은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부터 적용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업주가 우려하는 것처럼 중대재해가 발생한다고 해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무조건 처벌받는 것이 아니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 이행하면 중대 재해가 발생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울산은 산업재해 발생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다. 중화학공업과 제조업이 많아 산업재해가 빈번한 점도 없지 않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40대 가장이 조선소 작업 현장에서 작업중 떨어져 사망하는 등 2건과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노동자가 리프트설비에 몸이 끼이는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 등 2건이 발생해 120만 울산시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세계 조선산업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니, 5대 자동차 생산 강국에 진입했다느니 라고 하지만 산업재해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후진국보다 못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계속 후진적 오명을 듣고 있을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울산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 반갑다. 이미 자치조례를 제정하고 전담기구를 만들어 전담 직원을 배치했다. 앞으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위원회도 구성할 계획이다. 공공시설로 인한 산재로부터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는 각오다. 민간 사업체 역시 준비가 한창이다. 안전보건관리 조치가 완비되면 울산시 산재율이 확 떨어질 것으로 자신한다. 기업들 역시 유익하고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자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생명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함’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기에 충분한 이유다.
대한민국이 10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K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렇지만, 국민안전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처지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율과 사망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경제 규모만 커진다고 모두 선진국으로 불리진 않는다.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분야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오는 27일 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첫 차가 출발한다. 사업주, 노동자 모두 승객 또는 운전자 둘 중 반드시 하나다. 앞으로는 울산에서 산재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기를 소망해본다.

김미정 울산시 노동정책과 산업안전보건담당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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