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나에게도 다음 생이 있다면/ 한 번만 한 번만 더 당신 자식 되고 싶지만/ 어머니 또 힘들게 할까 봐 바랄 수가 없어라’ 
<박구하 시인의 ‘어머니’>. 한번만 더 당신의 자식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또 힘들게 할까봐 바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많은 사모곡(思母曲)이 있지만 너무나 간절한 시다.
‘나의 일곱 살 적 어머니는/ 하얀 목련꽃이셨다// 눈부신 봄 한낮 적막하게/ 빈 집을 지키는//(중략) 그녀의 육신을 묻고 돌아선/ 나의 스물 아홉 살// 어머니는 이제 별이고 바람이셨다// 내 이마에 잔잔히 흐르는/ 흰 구름이셨다’<오세영 시인의 ‘어머니’> 시는 독자를 울려야지 제가 울면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 

아들은 어머니가 마음 안에 여전히 살아 계신다고 말한다. 잃고도 잃지 않았다고, 잃지 않아지는 그 마음이 참으로 절절하다.
육신은 떠나고 없어도 어머니는 우리 곁에 매일 매일 평생 사신다. 올려다본 높은 하늘에 어머니는 사신다.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을 위해 스스로 소유한 것이 하나도 없다. 어머니의  강하고 위대한 힘은 마르지 않는 사랑과 간절한 기도로부터 생겨난다.

과일을 먹을 때는 그 열매 맺는 나무를 생각하고, 물을 마실 때면 근원을 생각하라(飮水思源)고 했다. 모두 엄마가 있었기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 엄마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여미어 온다.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인간이 입술에 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가 ‘어머니’라고 했다. ‘엄마’ ‘어머니’라는 말을 듣거나 부르면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작동해 울컥할 때가 있다.

내리 사랑은 잊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효도해야 한다는 말은 있어도 자식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효자 효부상은 있어도 자식 사랑 상은 없다. 자식 사랑은 본능이고 부모 사랑은 이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 핑계로 부모님을 찾아보는 일이 뜸하지는 않았나. “어버이날 찾아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잉~”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용돈 보내 드리는 것으로 효도를 다 한 것처럼 여겼다. 이번 5월엔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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