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전 울산과학대 교양교수

업무가중·인력부족 간호사 처우 개선 필요
시대요청·공공이익 실현 간호법 제정 요구
특정 기득권 대립보다 ‘국민건강’최우선을

 '간호법' 제정안이 지난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고 이제 법사위원회와 본회의 의결만을 남겨놓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및 간호사를 '의료인'으로 규정하고 의료에 필요한 기본 사항들을 법률로 정하고 있다. 이는 의사 5,000여명에 간호사 1,700여명 뿐이던 시절인 1951년 '국민의료법'을 기초로 한 것이라 주로 의사들에 대한 법인 셈이다. 여기다 이 법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의료인을 강제징용하기 위해 당시와 모든 의료관련 법안을 통합한 1944년 조선의료령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일제 잔재가 현행 의료법에 남아있는 셈이다. 특히 지금은 의사와 간호사 비율이 '국민의료법'이 만들어졌던 당시 정반대로 역전돼 있다. 법적 의료인에서 의사의 일차적 중요성을 우선하더라도 인력 규모의 혁명적 변화만큼 반영된 법체계 마련이 절실하다.
 산업 및 직업 관련 법률이 모두 그렇듯 현재 '간호법' 제정을 두고 찬반 논란이 여전하다. 의사와 간호조무사 단체가 간호사만의 이익을 위한 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표면상 국민건강을 위한 일이라고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집단이익을 위한 행동이 내포돼 있다. 누구의 주장이 '시대적 요청과 공공의 이익'에 더 가까운지를 따져보는 시민들의 합리적 식견이 필요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처럼' 법 제정에 앞장서게 된 간호사의 '간호법' 제정 요구는 무엇 때문일까? 현재 우리나라는 간호사 부족과 그에 따른 업무가중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은 국민 1인당 연 평균 외래진료 횟수나 입원 일수가 OECD 평균보다 각각 2.5배나 많은 1위 국가다. 반면 인구대비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절반 이하다. 일에 지치고 관계에 시달린 간호사들이 일터를 떠나고 있다. 면허 간호사는 48만명에 달하지만 의료현장 임상간호사는 그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그 결과 간호사 근속기간이 평균 7년 5개월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숙련된 간호사가 부족하다. 안전하고 수준 높은 간호서비스가 구조적으로 제약된다. 거기다 치료로 한정되던 의료행위가 이제는 고령화와 복지 보편화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라는 새로운 추세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에 간호 인력의 처우 개선을 통한 숙련 간호사 확보, 급변하는 의료 패러다임에 대응하는 보건의료 성숙을 위해 합리적 법제화가 시급하다. '간호법' 제정은 이를 위한 필연적·공익적 요청임이 분명하다. 이미 90개 국가 이상에도 독자적 간호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가!
 의사단체는 '간호법' 제정이 기존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입법이라며 크게 반대한다. 권력(power)이란 어떤 '결정(행동)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힘이지만, 이미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대해서는 '아무 결정도 일어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를 지켜낸다. 이 후자의 권력행사를 정치학은 무의사결정(non-decision making)이라고 한다. 개혁을 반대하는 측은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의사들의 고충도 물론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의료계 내부의 권력과 권위는 의사들의 몫이자 기득권이다. 간호사권익이 법적으로 보강되더라도 그것이 의사의 권위와 리더십을 얼마나 위협할 것인가? 그리고 이미 법안 수정을 통하여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유연화 시키려던 조항도 기존 의료법 조문대로 환원됐다. 의사단체의 법안 반대는 과연 공익을 위한 것인가 되묻고 싶다.
 면허 아닌 자격으로 인정받는 간호조무사 업무는 법리상 '간호사의 지도'와 충돌할 수 없다. 게다가 서로의 취업처도 크게 겹치지 않도록 의료계가 이미 구조화돼 있다. 오히려 간호조무사협회를 법정단체로 인정토록 법안에 추가해서 그 단체적 권익도 배려했다.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로 라인업 되는 '업무적' 위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전제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라는 것이고 서로간의 '인격적' 존중과 상호협조가 중요하다. ‘간호법’이 제정되더라도 이 원칙만큼은 의료인력 모두가 가슴에 새기길 바란다. 다가오는 시대일수록 더욱.

 

유영국
전 울산과학대 교양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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